customer 5922 장경이 님
밑빠진 화병
장경이님을 위한 화병, 60x1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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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낮선 사람 둘을 데리고 들어온 윤엽이 형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경쾌하다.
그 중 들꽃을 들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이곳 화성공장에는 여자가 드나든 적이 없다’라는 생각이 스치며 가
벼운 인사를 나누던 순간, 그녀는 들고 있던 꽃을 화덕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불 앞에 꽃이
위험하다는 '주의’의 말을 날렸는데 그녀는 그것을 ‘매우 강한 경고’로 인식한 듯 황급히 맞은편 나무작업대 위
로 그 꽃을 옮겨놓았다.
그럭저럭 그들이 구경을 마치고 내려간 후, 나는 작업대 위에 안쓰럽게 누워있던 꽃을 아쉬운 대로 주변에 있던
배관파이프 연결부속에 꽂아두었고 일하는 중간 중간 그 꽃을 보며 잠시 쉬어가곤 했다.이미 시들어버린 그 꽃
은 밑 빠진 화병에서 그대로 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늦었지만 그 날, 나에게 들꽃을 선물한 장경이 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파이프부속의 밑을 막아서 만든 이 화병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