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싸고 있다.
선반 위에는 오래된 먼지가 쌓여 있다. 8년의 세월동안 소리 없이 내려앉아 다져진 검은색....
단단한 껍질처럼 굳어 있다.
트럭에 실어 보내고 태워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버렸다. 그래, 우린 개발에 밀려나는 이주민이 아니라 물질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중인 거다.
1톤 트럭으로 일곱 번째, 벌써 2주가 넘었다. 갑자기 춥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가을이 가버렸다. 이렇게 우리는 목리에서의 9번째 겨울을 보고야 마는가.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추운게 아니다. 폐허목리를 쓸어 덮은 기운이 차갑고, 이것을 목격하는 우리 마음이 시리다.
성명이가 실리콘 깡통을 비워 불을 놓으니 그 연기에 너도나도 눈물이 흐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난로를 먼저 실어가 버리는 게 아니었다.
그래. 우리가 이 궁상맞은 기분을 감당하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얼마 전, 헤이리에서 만난 팻독피쉬 님의 흙부대 카페를 뒤적거려 기압차를 이용해 열효율이 높다는 로켓스토브를 만들기로 했다.
변변한 재료와 망치 한자루도 안 남아있는 작업실 바닥을 뒤져 성명이와 승천이가 쓰던 실리콘깡통과 왁스깡통을 주워와 대충 두들기고 아크용접을 해서 누덕누덕한 난로 하나를 완성했다.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본 애들의 혹평이 터져 나왔다. 글쎄,.. 도구 없는 화성공장이라....
사실, 내가 생각해도 좀 그랬다. 변명이란 게 궁색하게도 그 흔한 연장 탓이라니....
잠시 후 불을 붙이자 조금 전 그들의 잔인한 평가는 간사하게도 백팔십도로 뒤집혔다.
연소실에서 연통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줄기의 소리는 마치 대기권을 뚫고 발사된 나로호의 그것과 같았다. “화성공장에서 만든 최초의 쓸모 있는 물건“이란 찬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오늘의 발사성공에 누구보다도 고무된 성명이가 300만원이 넘게 들었다는 자신의 2007년 개인전 도록 한 박스를 제공했다.
짐을 꾸리는 시간보다 모여앉아 떠드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우리는 마치 작년 겨울처럼 불 앞에 모여앉아 이 흥미로운 작업소스의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주고받았다.
그렇다. 이렇게 함께 노는 분위기가 목리창작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성공적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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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역시 반신반의한 상태로 만들긴 했지만 이건 형태나 기능, 공정성까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물건이다.
마땅한 필기구가 없어 굴러다니는 분필을 잡았지만 난 단 30분 만에 만든 이 누더기 난로에 정식으로 작품서명을 하기로 했다. 우울했던 우리 목리에서의 마지막 겨울을 따뜻하게 해 준 기특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로켓스토브의 구조와 효율을 알려준 펫독피쉬 님께 감사드린다. 그 옛날 이렇게 연비 좋은 난로가 있었더라면 적어도 성냥팔이 소녀가 얼어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로켓깡통난로, 550*340*600mm, 2010
후.... 그건 그렇고, 무거운 짐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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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at 2010/11/21 00:22





